본문 바로가기
1

신라 이사부

by #!-- 2019. 4. 21.

현명한 신라의 정치인 이사부이야기이다. 그는 섬 울릉도를 신라로 편입시켰다. 그러면서 명성이 자자해졌다. 삼국사기에 이사부에관한 기록이 나와있다. 왕족이었나 보다. 내물왕 4세손이라 기록되어있다. 활동시기는 지증왕시기와 진흥왕이다.  우산국을 끌어들인 공적이 있다. 그리고 이웃의 가야국을 굴복했다. 고구려에도 영향을 미쳐 그 나라의 도살성과 백제에서는 금현성을 차지했다. 지증왕 13년에 우산국을 영입했다. 진흥왕 11년 도살성, 금현성이다.
 진흥왕의 지시였다. 가야국을 공격한 일이다. 15~16세의 사다함도 출전하려 했다. 왕의 허락이 처음에는 없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사다함을 귀당비장으로 두었다. 사다함을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사부는 신라의 영토를 넓히는 데에 일조를 했다. 신라는 이사부에서 시작한 정복 전쟁은 김춘추에서 완성되었다. 이사부의 업적들은 지증왕, 진흥왕 시기의 일이다. 그 사이의 법흥왕 때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었다.

 이사부는 밀어붙이는 싸움을 하기보다는 지혜를 써서 이기기도 하였다. 진흥왕시기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이 있었다. 고구려는 북쪽에서 내려와 백제의 금현성을 차지했다. 백제는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진흥왕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군대가 힘든 틈에 공격하여 두개의 성을 다 점령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이사부다. 이후 울릉도 점령도 그러하다.  이 때는 바야흐로 지증왕시기이다. 강릉은 예전에 아슬라주라 불리었다. 이사부는 이 곳의 군주였다. 우산국을 합치려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뭍에는 그 섬의 사람들이 사납고 힘이 세다고 전해져 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썼다. 이사부는 "너희가 항복하지 않으면 맹수를 풀어 놓겠다"고 어름장을 놓았다. 우산국사람들은 항복했다. 기록은 약간 다른다. 삼국사기는 이 전쟁이 있기 7년 전에 주, 군, 현이라는 지역 명칭이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우산국 사람들이 바다간 간격을 생각하고 도리를 다하지 않았다 하였다. 그래서 박이종이 군대로 토벌했다 한다. 삼국유사는 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밖에 다른곳에도 이사부의 기록이 있다. 바로 화랑세기이다. 아버지 아진공, 어머니 보옥공주 사이에서 태종이 태어났다. 법흥왕의 딸 지소는 원래 식도부인이다. 입종과 결혼하였고 진흥왕의 어머니이다. 법흥왕이 죽고 계부와 황화공주를 낳는다. 그런데 영실과 헤어진 후 이사부와 결혼한다. 후에 세종을 낳는다. 세종은 미실의 남편이 된다. 세종과 미실이 결혼한다.  진흥왕이 왕위에 앉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태후가 된다. 미실을 며느리로 들일 것인지 이사부 즉 태종과 상의한다.  
 

동명왕 온조왕

이번엔 러시아다.

 터키 이야기

아르헨티나의 가능성은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백 관창  (0) 2019.04.30
백결선생 / 의자왕  (0) 2019.04.22
동명왕 온조왕  (0) 2019.04.18
이번엔 러시아다.  (0) 2019.04.16
터키 이야기  (0) 2019.04.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