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동명왕 온조왕

by #!-- 2019. 4. 18.

 고구려를 세웠다. 이왕은. 왕이 되기전에는 주몽, 추모, 상해, 도모라고도 하고 이후는 동명왕(동명성왕)이라 불린다. 아버지는 금와이며 어머니 유화사이에서 태어났다. 주몽의 아버지는 동부여왕이다. 어머니는 하백의 딸 유화라 한다. 삼국사기에 기록이 있다. 동부여에 해부루가 서거하고 그 이후에 금와가 올랐다. 원래는 유화를 부인으로 하였다. 그러나 하늘의 해모수와 일이 있었다는 풍문이 들었다. 이에 화가 나서 궁실에 유폐하는 일이 있었다. 햇빛을 받고 임신하여 알을 하나 낳았다. 남자 아이가 나왓다. 주몽이다. 활을 잘 쏜다는 의미이다. 모두 7형제가 있었는데 재주가 제일 좋았다. 왕은 그를 보살펴주려 하였으나 형제들과 신하들은 주몽은 좋아하지 않았다. 난이 일어났고 그래서 주몽은 피신하여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

 

 백제를 세운 것은 온조왕이다.

 그의 아버지는 주몽이다. 아버지가 왕이니 왕위를 물려받을 것으로 꿈꾸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보는 이복형 유리라는 인물이 왔다. 부여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는 고구려의 다음 왕이 되었다. 그래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남쪽으로 내려왔다. 새 나라를 세웠다. 처음 이름은 십제였다. 이후 이름을 백제로 변경하였다. 백제를 처음부터 세운 건 온조였다. 주몽의 이야기를 하자면 주몽은 부여에서 도망쳐 졸본 땅으로 갔다. 그 지역 족장의 딸 소서노와 혼인을 해서 아이 둘을 가졌다. 큰 아이 비류, 작은 아이 온조이다. 그런데 후계자는 한 명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복형이라 주장하는 유리가 어느날 찾아왔다. 녹슨 칼 반쪽을 가져왔다. 부여에서 큰아들로 인정됐다. 그러고는 임금이 되었다. 사실인즉 이랬다. 부여에서 한번 주몽은 결혼을 했었던 것이다. 그 부인에게서 낳은 아이였다. 수서노는 두번째 부인인 것이다. 주몽이 생을 마감하고 비류, 온조는 애매했다. 유리라 왕위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비류, 온조, 그의 어머니 소서노는 남쪽으로 떠났다. 신하 10명도 함께 했다. 그리고 떠나고자 하는 이들도 따라 나섰다.  그렇게 형제가 찾은 땅이 한강 주변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자리가 좋아 보였나 보다. 한강이라는 큰 강이 보이고 높은 산이 동쪽에 자리 잡고 남쪽으로는 평야가 있어 지리적으로 적당했다. 온조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비류는 안 그랬다. 더 남쪽으로 가고 싶어 했다. 바다가 보이는 곳을 원했다. 바다쪽 땅은 소금기로 농사가 안될 수 있으니 말리는 이들이 있었다. 비류는 떠나기로 했다. 마침내 각자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온조는 한강주변에 정착했다. 그를 따르는 무리와 하남지역에 성을 쌓았다. 위례성이다. 처음 나라 이름 십제로 지은 이유는 10명의 신하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2년 되었을 때이며 기원전 18년이다.

 비류는 강을 따라 내려가 미주홀이라는 땅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인천지역으로 땅이 질고 소금기가 있었다. 결국 농사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정착하지 못하고 실패해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그가 한참 뒤 돌아오자 온조는 이미 기초를 잘 닦아 나라를 다지고 있었다. 이에 비류는 후회하며 병들어 죽었다. 비류를 따르던 자들은 온조에게 의탁했다. 이때 이름이 백제로 정착되었다. 백제는 660년이나 이어갔다. 후에 신라, 당에 의해서 멸망하게 된다. 그때까지 31명의 왕을 거친다.

 

[1] - 이번엔 러시아다.

 [1] - 터키 이야기

[1] - 아르헨티나의 가능성은

[1] - 캄보디아의 환율등 경제상황

[1] - 인도네시아 금융 탐방가기

 [1] - 아시아의 별난 부자들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결선생 / 의자왕  (0) 2019.04.22
신라 이사부  (0) 2019.04.21
이번엔 러시아다.  (0) 2019.04.16
터키 이야기  (0) 2019.04.11
아르헨티나의 가능성은  (0) 2019.04.08

댓글